제3장 ‘LG이노텍’으로 재탄생(2000-2009)

6. ‘통합 LG이노텍’ 시대가 열리다

LG이노텍, 국민기업이 되다

2000년 5월 LG이노텍은 사명 변경과 함께 기업공개를 위해 증권거래소 상장을 추진했다. 이에 앞선 2000년 3월 증권거래소에 상장예비심사청구서를 제출하였고, 9월에는 증권거래소의 주권 예비상장심사에서 상장 적격성을 갖춘 것으로 인정돼 심사를 통과했다. 그러나 11월 중 상장이 예견된 가운데 주식시장 침체로 인해 공모가 산정에 어려움을 겪게 됐다. 주식시장 상황이 적정한 주식 가치를 평가받기 어렵다는 판단에서 결국 LG이노텍은 기업공개를 연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후 2004년 매출 1조 원 돌파가 기대되는 등 LG이노텍의 외형성장과 함께 주식시장 상장이 재추진되었으나, 이 해 방산사업의 매각으로 매출이 예상보다 감소하며 LG이노텍은 증권거래소 상장 계획을 또 한 번 철회하게 됐다.
LG이노텍은 다시 4년의 세월이 지난 2008년 초 기업공개 방침을 확정하고 코스피 상장을 추진했다. 이는 장기적으로 LG마이크론과 합병을 염두에 둔 결정이기도 했다. LG마이크론은 코스닥 상장사였고, 따라서 합병에 앞서 LG이노텍을 코스피로 상장하는 것이 일차적 순서였다.

유가증권 상장(IPO)(2008)

이를 위해 허영호 LG이노텍 CEO는 2007년 말부터 LG마이크론의 대표이사를 겸직했다.
2008년 7월 신규상장을 앞두고 기업설명회를 개최했으나 경기 부진으로 인해 코스피지수가 급락하며 불안한 시황을 보였다. 이 무렵 상장을 추진하고 있던 대기업들은 신규상장을 미루거나 철회하기 시작했다. 이런 가운데에서도 2008년 7월 10일 우리사주 청약을 위한 사내공모를 진행하였고, LG이노텍은 실권주 없이 100% 청약을 달성했다. 그러나 2008년 7월 14~15일 일반 투자자를 대상으로 공모를 마감한 결과 최종 청약경쟁률이 0.66 대 1에 그쳐 청약이 미달 됐다. 기관투자가들을 대상으로 인수자를 찾았으나 공모시장은 얼어붙었다.
두 번이나 상장을 자진 철회한 아픔을 갖고 있던 LG이노텍은 시장을 계속 모니터링하면서 기업공개를 밀어붙였다. 공모가격보다 중요한 것은 향후의 지속적인 주가 상승이었으며, 이는 LG이노텍이 더 큰 회사로 성장하면 해결되는 일이었다. 드디어 7월 24일 유가증권시장거래소 전광판에 LG이노텍의 이름이 뜨면서 코스피 신규상장이 이루어졌다. 2000년부터 준비해온 상장 노력이 결실을 보는 순간이었다. 상장을 통해 LG이노텍은 국내외 고객에 브랜드를 알리면서 적극적으로 시장 개척에 나설 수 있게 됐다. 또한 LG마이크론과의 합병을 신속하게 추진할 수 있었다.




LG마이크론과 대통합

2008년 8월 28일 LG이노텍은 LG마이크론과 합병 추진을 공식 선언했다. LG이노텍과 LG마이크론은 이후 합병에 대한 검토에 들어가, 9월 29일 각각 이사회를 열고 양사 통합을 결정했다.
LG이노텍과 LG마이크론의 합병은 LG그룹 내 또 다른 사업의 축으로서 부품업체를 집중 육성한다는 새로운 비전에 따른 것이었다. 당시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전자산업에서 세트 사업도 중요하지만, 고성장 고수익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부품 사업이 더욱 중요하다고 보고 소재·부품 사업의 국제 경쟁력을 확보할 것을 지시했다.
이에 따라 그룹 내 핵심사업인 전자(LG전자)와 디스플레이(LG디스플레이) 사업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대형 부품업체를 탄생시키는 계기가 마련됐다. 허영호 CEO는 2007년 말부터 LG마이크론 CEO를 겸직하며 양사 간 합병을 이끌었다. LG이노텍과 LG마이크론의 통합은 서로 중복되는 사업부문이 없다는 것이 큰 강점이었다.

임시주주총회에서 LG이노텍, LG마이크론과 통합 승인(2008)

LG마이크론은 디스플레이와 반도체 소재·부품 사업을 중심으로 하면서 인쇄회로기판으로 사업영역을 다각화하고 있었다. LG이노텍은 모터, 디지털 튜너, 파워모듈, 중소형 LCD 모듈, 카메라모듈 등 첨단 전자부품 사업을 전개하면서 LED, 차량 전장부품 등을 신성장사업으로 추진하고 있었다. 따라서 양사가 통합할 경우 소재·부품 사업의 전·후방 모두에서 사업구조가 견고한 초대형 부품회사의 탄생이 예고됐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발생하면서 우리 증시는 한 치 앞을 볼 수 없게 됐다. 설상가상 미국 제2의 가전유통업체인 서킷시티의 파산 신청으로 국내 IT 가전업계가 직격탄을 맞았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실물경기 침체로 파급되는 가운데 LG이노텍은 11월 14일 임시주주총회에서 LG마이크론과 합병 안건을 승인 처리했다. 하지만 주가 급락으로 인해 주식매수청구권 금액이 예상치를 훌쩍 넘어섰다. 합병 부담이 커지면서 결국 LG이노텍은 12월 5일 긴급 이사회를 열고 합병 연기 방안을 논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합병에 따른 유동성 위험에 따라 향후 적절한 시점에 다시 합병을 모색하기로 했다.
LG이노텍과 LG마이크론의 통합 작업은 해를 넘겨서 약 4개월 만에 재개됐다. LG이노텍과 LG마이크론은 2009년 4월 각각 이사회를 열고 양사 통합 추진 안건을 의결했다.
이번에는 주식시장이 상승 국면이어서 합병 여건은 긍정적이었다. 2009년 5월 19일, 임시주주총회에서 LG마이크론과 합병계약이 원안대로 통과됐다. 통합회사의 사명은 존속법인인 LG이노텍으로 결정됐다.
2009년 7월 1일 드디어 통합 LG이노텍이 출범했다. 두 회사의 통합으로 글로벌 무대에 당당하게 나설 수 있는 위상이 갖춰졌다. LG이노텍은 통합사로 공식 출범과 함께 ‘The First Partner’라는 비전을 제시하고, 부품산업에서 2012년 ‘글로벌 Top 10’, 2015년 ‘글로벌 Top 5’에 진입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LG마이크론과 통합 후 LG이노텍은 서울 중구에 위치한 서울스퀘어로 본사를 이전했고, 허영호 CEO는 신사옥으로 출근하는 직원들에게 떡과 다과를 나눠주며 새 출발을 격려했다.
LG마이크론과 합병을 통해 LG이노텍은 2009년 연 매출이 2조 4,577억 원으로 LG이노텍 출범 이후 10년 만에 약 4배 매출 확대를 이루었다. 또한 이 해 LG이노텍은 창업 당시 기술을 전수받았던 일본알프스를 제치고 세계 전자부품 시장 매출 순위 9위에 이름을 올리며 목표를 조기 달성했다. 글로벌 매출 상위 10개 업체 중에는 일본이 8개사, 한국이 2개사(LG이노텍·삼성전기)가 포함됐고, LG이노텍은 우리나라 부품산업을 선도하는 기업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했다.

LG마이크론, LG이노텍 통합사 출범(2009)